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하의 기적 (문단 편집) == 후폭풍 == 1992년, [[일본]]은 프로축구리그인 [[J리그]]를 야심차게 창설했고 자국에서 개최한 [[1992년 AFC 아시안컵]]까지 우승을 거머쥐는데 성공하면서 전국적으로 사기가 최고조로 크게 오른 상황이었다. 이와 반대로 한국에서는 충격적으로 당시 8개국(8강) 본선 [[1992 AFC 아시안컵 일본]]에 진출 실패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신문선]]이 대학교 선수들을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대처를 했기 때문이었는데, 예선에서 국가대표팀이 아니라 대학 선발팀을 내보냈다가 8강 본선 조별리그에도 못 가보고 태국을 상대로 참패를 하면서 쓴 맛을 보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표팀은 더 이상 [[2군|B팀]]을 구성해 차출하지 않으며, AFC에서도 무조건 A팀만 참가하도록 정했다.] 결국, 탈락의 후폭풍으로 당시 [[김우중]] 대한축구협회장은 '''"앞으로 내가 신문선 패거리와 상종을 하면 사람이 아니라 개다."''' 라는 명언을 남기면서 사임을 하게 되었고 이후 [[범 현대가]]의 장기집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32년 후, [[위르겐 클린스만|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 선임되면서 [[클린스만 근무태만 논란|구설수에 올랐고]], [[클린스만호/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60년만의 아시안컵 우승 실패]]란 결과를 받아든데다, [[클린스만호/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선수단 불화 논란|선수단 내의 불엽화음]]에 대한 처리로 인해 무능의 극치를 달리고 있으며 그 [[정몽규|협회의 수장이자 원흉]]이 바로 범 현대가 출신이다.]. 일본은 아시안컵에서 첫 우승을 해낸 기세를 몰아 [[1994 FIFA 월드컵 미국]]의 첫 본선진출을 노리면서 '''"[[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강팀이 되었나|역대 스쿼드들 중에서 가장 강한 팀이다.]]"''' --[[일본 1군]]-- --[[기적의 세대]]-- 라면서 자화자찬하는 평가를 했는데, 만나면 항상 털리기만 했었던[* 농담이 아니라, 한국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일본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 무려 5번이었다.] [[대한민국]]을 상대로 1-0 승리까지 했으니 [[일본]]의 자신감은 후지산을 뚫을 정도로 크게 올라온 상태였다. 하지만 추가시간의 충격적인 헤딩 동점골로 인해 [[일본]]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FIFA 월드컵 본선 무대로 진출할 기회는 [[대한민국|대한해협 건너로 날아가버렸다.]] 그동안 일본은 아시아에 월드컵 24강 본선 진출권 2장이 주어졌던 시대인 월드컵까지는 월드컵 본선 진출이 전무했고, [[1998 FIFA 월드컵]]에서 32강 본선으로 확대되어 아시아에 월드컵 본선 진출권이 거의 두 배인 3.5장으로 늘어나서 [[조호르바루의 환희|월드컵 본선에 첫 진출할 수 있었다.]] 실제로, 1954년, 1962년, 1970년, 1978년, 198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언제나 한국이 일본의 눈 앞에서 군림하며 발목을 잡고 가로막으면서 예선탈락을 시키기도 했다. 특히, 198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본선진출 티켓 1장을 두고 홈 앤드 어웨이에서 모두 승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의 기업들은 [[마라카낭의 비극#s-3|자국의 월드컵 진출을 거의 확실시하여 일본 축구 대표팀 관련 상품을 대량생산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대부분 폐기 처분되었다]]. [youtube(MVhXS2c1WDo)] [youtube(rj_Yntopiz4)] 영상의 남성 진행자는 [[위닝 일레븐]]의 해설자로 유명한 존 카비라의 형제 지에이 카비라. 당시 해설을 맡았던 [[오카다 다케시]] 감독은, '''"이제야 [[일본]] 대표팀이 아시아 축구로서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가서 비슷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본선 진출에 실패해서 너무나도 슬프다."'''라는 말을 했고, 해설 도중 눈물을 흘리면서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실, 오카다 감독이 이렇게 이야기를 한 뒷배경이 있는데, 불과 2년 전 자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우승 이전에 일본 축구는 그야말로 아시아권에서도 동네북 수준이었다. 중국에게도 심심하면 발리기 일쑤였고, 오죽하면 이때까지 한국에선 한일전보다 남북전, 중동전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게다가 [[J리그]]도 만들어진게 겨우 2년 밖에 되지 않았던 때였고 본격적인 축구에 대한 투자가 시작되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2년 전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달성하고도 일본 국내에서는 자신들의 실력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강팀이 되었나|일본은 왜 본선 진출에 실패했는가?]]"'''를 진지하게 토론하는 프로그램도 방송되는 등, [[일본 열도]]는 전국적으로 큰 허탈감에 빠졌다. 자신들이 이긴 [[대한민국]]에 본선진출 티켓을 빼앗겼으니 허탈할 지경이었다. 반면 [[대한민국]]은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대한민국이 일본을 극적으로 제치고 월드컵 3회 연속 본선 진출을 해냈습니다!"'''라며 낭보를 전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감동적인 월드컵 본선 3연속 진출을 확정지었고, 일본은 최초의 월드컵 본선 진출의 기회를 불과 30초를 못 버텨서 날려먹었다. 이렇게 기적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선수들은 당연히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가 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반대로 일본 선수들은 동점골과 함께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멘탈붕괴]] 상태에 빠져서 그대로 그라운드에 주저 앉았고, 일본의 축구 팬들은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만나기만 하면 맨날 털리기만 했었던 [[대한민국]]전에서 1:0으로 이겼으니 사상 첫 본선 진출의 9부 능선을 넘었다고 기뻐하면서 [[설레발]]을 쳤지만 귀화선수였던 [[루이 라모스]]는 한국전 승리 이후에 같은 동료들이 본선 진출이라도 한 것처럼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강한 불안감을 느꼈다고 인터뷰를 하였다. [[https://m.youtube.com/watch?v=lDNu0CW45G4&t=1s|#]] [youtube(SzdVzV9LRIA)] [youtube(6Cw0L8FBtR0)] 2023년 현재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재직 중인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당시의 경기에 미드필더로 출전했었다. 4분 35초부터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https://youtu.be/6Cw0L8FBtR0?t=276|#]] 도하의 기적 사건을 다루는 인터뷰에서 그는 '''"월드컵 진출에 나의 꿈을 걸었다. 바로 앞에서 월드컵 진출을 봤지만, 손에 쥐려 할 때, 갑자기 눈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 때보다 슬픈 기억은 없다. 당시 나는 호텔에 들어온 뒤에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라는 기억을 전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421&aid=0005585822|#]] 그리고 28년 후 자신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어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 도하의 기적을 일궈낸다. 그리고 [[나카야마 마사시]]도 '''"경기가 끝나는 순간을 기다리며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다. 꿈이 끝났을 때 처참했다. 사람들이 우는 게 보였다."'''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참고로 그 당시 '''일본 대표팀과 한국 대표팀의 숙소가 같았다.''' 일본 대표팀은 밖에서 한국 대표팀의 환호 소리를 들으면서 쓸쓸히 객실에서 패배감에 눈물을 흘렸고 고배를 마셔야 했고 잔인한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던 셈이다. [[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을 무너뜨린 [[일본]]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미우라 카즈요시]]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축구의 신이 있다면 따지고 싶었다. 그런 [[캡틴 츠바사]]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 날의 일이 미국 월드컵 기간 내내 나를 눈물짓게 만들었다."'''라고 자평했다. 한편 [[대한민국]]의 전 국가대표 선수이자 [[2017년]] 현재 [[아주대학교]] 축구부 감독인 [[하석주]]는 [[J리그]]에서 뛰던 1999년 12월 31일, [[일본]]의 BS 방송국의 축구 관련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앞으로 축구를 하면서 이런 일은 또 없을 거야."'''라고 자평했다.[* 월드컵 최종 예선의 앙금이 가시기도 전에,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8강전에서 [[대한민국]]과 [[일본]]이 다시 리턴매치를 하게 된다. [[한일전]]에 선발 출장한 미우라는 보란 듯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제골을 성공했다. 그리고 일본의 두번째 골은 [[조호르바루의 환희]]의 당시 대이란전에서 패색이 짙던 후반 극장골로 일본의 연장전 역전극을 이뤄내는데 발판을 마련한 조 쇼지였다. 하지만 난타전 끝에 [[유상철]]과 [[황선홍]]이 합작한 [[대한민국]]에 3-2로 패배하면서 짐을 쌌다.] 아래의 동영상을 통해서 [[이라크]]의 막판 동점 골이 터지는 순간부터 [[일본]] 열도가 어떻게 멘붕에 빠졌는지를 2002년 5월 19일 방송된 MBC 스페셜 <한일 축구 애증의 드라마 80년>의 한 장면에서 볼 수 있다.[* [[노정윤]]이 부상당하는 장면(46초)과 [[박항서]] 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베트남]] 감독의 모습도 보인다.(2분 6초).] [youtube(7mhdkTrXalo)] [youtube(5HbB0pYwBs8)] 5분 29초부터 현지팬들의 반응이 나오는데, 여기서터 '''"그런데, 경기 종료 10초 전!"''' 이라는 해설이 나온다. 그리고, 5분 48초부터 일본의 현지 반응이 나오는데 [[갑분싸|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이 분위기가 매우 조용해졌다.]] [youtube(hdr2nrAsJXI)] [youtube(J66ZLw7cUZ0)] '도하의 비극' 이후 [[일본]] TV 도쿄의 반응이다. 동영상 기준 3분 47초에 동점골 장면이 나온다. 5분 25초 이후 경기에서 비긴 후 일본 선수들의 리액션을 보면 갑작스레 일어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대로 그라운드 위에 그냥 앉아 버렸다.(8분 57초부터) 일본 축구의 레전드 하시라타니 코이치와 진행자들 역시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면서 눈물을 참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게다가, 이 잔인한 경기의 MOM으로 선정된 [[나카야마 마사시]]는 전혀 기뻐하지 못하고 얼굴을 아예 못 드는지라 [[https://youtu.be/b_A4-VtC0UA?t=532|MOM으로 잘했다고 칭찬을 듣는 것이 벌칙게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youtube(z4hUFnoNUFk)] [[오카다 다케시]] 前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해설을 하는 도중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옆에 있는 다시마 고조에게 말을 넘기고 너무 슬픈 나머지 결국 눈물까지 보였다.[[https://youtu.be/4EIoW4XVUiU?t=487|고화질 영상]] 옆에서 같이 진행하는 아나운서(토모다 미유키)도 목이 메여서 초반부터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다가 겨우 '''"정말 유감입니다."''' 라는 말을 겨우 꺼냈다. 역시나 두 축구인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진행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훗날 [[오카다 다케시]] 감독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조호르바루의 환희|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16강 진출에 성공(9위)했다. 그 성과로 도하의 비극의 안타까운 감정을 어느 정도 털어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